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

나는 영화평론가가 아니기에,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모른다. 그리고 설사 아주 뛰어난 영화평론가가 좋은 영화의 기준을 제시해준다 하여도, 그것은 그의 기준이지 나의 기준이 아니다. 때로는 내게 좋은 영화와 세상이 좋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철의 여인은 내게 그런 영화였다.

무엇이 '절대적으로' 좋은 영화인지 나는 모르기에, 나에게 메시지를 주고 내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분명 내 안에 강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물론 사람들은 마가렛 대처가 없는 철의 여인에 불과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마가렛 대처가 있는 철의 여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성공스토리가 아니어서 안심했다. 식료품집 딸에 불과한 평범한 신분, 게다가 그 당시에 '여성'이라는 약자의 위치에서 어떤 역경을 거쳐 총리가 되었고, 또 어떤 역경을 거쳐 3번이나 연임하게 되었는지 웅장한 음악으로 감동을 조장하는 영화가 아니라서 안심이었다. 역경을 거스르고 이겨내는 인간의 성공스토리는 뭉클하지만, 그런 서사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삶에 당연히 있을 법한 내용들을 생략한다는 것이다. 짧게 압축되어 만들어진 성공스토리는 관객들에게 크게 두가지 감정을 전해준다. 하나는, 그 인물이 대단하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나도 노력해서 꿈을 이루겠다는 다짐. 하지만 나는 여기에는 아름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쓸쓸함이 없고, 성공 뒤켠의 그림자가 없기에.

마가렛 대처를 영웅이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영웅이라고 불릴 수 있는 통치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마가렛 대처가 받고 있는 비난을 비단 그녀에게만 향하는 비난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통치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최초의 여성총리, 헌정 사상 없었던 11년간의 통치라는 업적은 기릴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노조를 억압하고 많은 공공 기관을 민영화시킨 것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공부를 하려고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닐 테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서 곱씹어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왜, 지금, 마가렛 대처인지를.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위해 바쳐진 영화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는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감독은 지금 마가렛 대처를 데리고 왔는가.
영화에서는 꼭 지금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경제가 좋지 않은 영국이다. 대처는 긴축재정을 하려고 하고, 국민들은 사회복지혜택을 원한다. 하지만 복지정책을 해나가기엔 재정이 부족하다. 마가렛 대처는 자신의 선택이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긴축 정책을 고수했다. 꼭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닌가.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지만, '표'를 위한 정책과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권을 혐오한다. 진보, 보수를 떠나서 국회의원으로서의 생명줄이 끊기지 않기 위해 민심을 현혹시킬만한 정책들을 마구 내놓고 있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정치적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또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관심이 높다고 평가되는 이때에. 왜 여전히 건설적인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그닥 부유층도 아니고 대단히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랬다. 왜 무상급식 문제가 대두되었는가. 실질적으로 이것이 문제였기에 대두되었던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로 탁상 위에 놓여진 카드였기에 그랬다. 현재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빈부격차와 기회의 불평등이 단지 급식을 무료로 해주느냐 마느냐의 접근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말 가치있는 사회복지정책은 돈을 얼마나 주느냐가 아니라,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는지가 아닌지.
사회복지는 필요하다. 균등한 교육기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표를 얻기 위한 재정남발은 공멸로 가는 길일 뿐이다. 나는 철의 여인에서 마가렛 대처의 그러한 접근 방식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그 생각을 추진했던 방식에는 반대하지만, 그 생각 자체는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유럽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긴축재정을 해야하는 상황인데, 대표적으로 그리스나 이태리 국민들이 그것에 반대하여 시위를 하고 있다. 영화 속 상황과 아주 똑같은 상황이다. 왜 지금 마가렛 대처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을까. 국가가 부도가 날 지경이어도 일시적인 비판을 막기 위해 재정을 남발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실질적으로 국가를 일으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재정을 사용해야하는 것인가. 물론 위기를 겪고 있는 국민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다 같이 죽느냐, 아니면 위기를 견디며 재건할 준비를 해나가느냐. 이 영화에서 마가렛 대처는 후자가 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정치적 담론을 떠나서, 이 영화가 의미있는 첫번째 이유이다.

또한 마가렛 대처는 유럽 연합에 가입하기를 거부한 탓에 사퇴를 하게 되었다. 유럽 연합에 가입하길 강력히 원하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았던 유일한 지도자인 셈이다. 그리고 지금, 유럽 연합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경제적으로 부실한 남유럽 국가들 탓에 애꿎은 독일, 프랑스, 그리고 북유럽 국가들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서야 이야기한다. 애초에 서로 다른 경제적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 연합을 만든 것부터가 문제였다고. 다른 경제적 위상에 있는 국가가 같은 화폐를 쓰니 문제가 생길수밖에 없다고. 결국엔 몇몇 국가의 문제가 유럽연합의 문제가 되고, 한 국가의 화폐가 아닌 유럽 전체의 화폐가 흔들리니 그것이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게 되었다고. 유럽연합이 문제라고, 지금 세상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마가렛 대처는 바로 그 유럽 연합에 영국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사퇴를 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가 바로 지금, 의미가 있는 두번째 이유이다.

위의 두가지 이유는 나를 생각하게 했다. 왜 지금 마가렛 대처를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왜 하필 지금이며, 지금의 상황에서 마가렛 대처를 이야기할 때 나는 무엇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하지만, 내 안에 커다란 파동을 주었던 것은 권력의 뒤안길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마가렛 대처의 모습이었다. 마가렛 대처가 어디있는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왜 저것은 마가렛 대처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고. 왜 권력의 뒤안길에서 서성이며 치매를 앓고 있는 마가렛 대처는 마가렛 대처가 아니느냐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느냐고 나는 묻고 싶다.

마가렛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영국을 이끌었던 여성이다. 그런 여성이 지금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질병이다. 마가렛 대처는 지금 백발이 된 모습으로 거울에 앉아, 영국을 이끌고 있는 환영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환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에 너무나도 잔인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곁에 있고, 자신의 주장과 뜻이 세상에 의미있었던 과거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현실의 차이에서 헤매이는 것은 왜 마가렛 대처가 아닌가. 왜 그것을 조명하는 일은 아름답지 않은 일인가. 나는 힘없이 생의 해질녘을 걷고 있는 어깨가 처진 할머니도 마가렛 대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기에, 이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물었다. 남편의 환영에게. Were you happy?라고. 치매때문에 지금 남편이 곁에 있고 자신이 영국의 수상이라고 생각하다가, 모든 것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임을 깨달을 때,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할까. 그리고, 자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았을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하는 쓸쓸함은 얼마나 아픈 것인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행복했느냐고 묻는 일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 이미 죽은 이에게 묻는 마음은 어떨까. 내 곁을 지켜준 사람,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행복하지 않았을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누군가에게, 행복하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행복했냐고 묻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너무도 슬플 것 같다.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내가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을 것 같아서.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Were you happy?라니. 무서운 질문이다. 아픈 질문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철의 여인이라는 철갑을 두른듯한 이미지가 아닌, 그 안에 여린 마음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을 인간 마가렛 대처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질 않는다. 설거지 같은 것을 하며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당차게 인생을 살아왔던 그녀가, 홀로 부엌에서 자신이 마신 찻잔들을 씻어낸다. 그리고는 계단을 기웃거리다가 다시 방안으로 들어간다. 과거의 영광과 현실의 초라함에서 방황하고 있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했던 옛날과 홀로 남은 지금을 헤매이고 있는 그녀가, 나는 너무나도 아팠다.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하는 쓸쓸함은 너무나도 크다.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 쓸쓸함을 짊어지고 간다. 그렇지만 마가렛 대처가 짊어지고 가고 있는 쓸쓸함의 무게는 유난히 무거워보인다. 1920년대에 태어나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영국 수상의 자리에 3번이나 오른 그녀가 지금, 2012년 현재에 치매를 앓고 있다. 오늘날의 영국에 대해 할 말이 많을 테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과거의 영광에 헤매이다 정신을 차리면 아무도 없는 집안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할머니가 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역사책 속의 그녀가 이런 모습으로 영화에 나타난 것에 우리는 당황한다. 하지만 바로 그 '당황스러움'이 바로 지금의 그녀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이다. 그녀 역시 역사책 같은 과거를 헤매다 초라하고 쓸쓸한 현실을 만나며 매일매일을 당황스러워할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과거 어디쯤을 헤매이다가 화들짝 놀라 텅 빈 방안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그녀도, 명백히 마가렛 대처다.

내게 이 영화는, 바로 이런 영화다. 이 모든 것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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